Thursday, September 13, 2007

만약 진중권이 지도교수라면

디워의 미국인들의 평가는 가히 볼만하다. 몇몇 한국 관객들까지 가세한 까기는 보기 안쓰러울 정도다.
이런 현상은 이미 한국에서도 은연중 예언된 바 있다.
물론 그는 예언하기를 거절했지만 "예언"하지 않았을뿐 우리는 예언을 받았다.

근데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그가 나의 지도교수라면?
지금 내가 쓰고 있는 논문에 대해서 뭐라고 할까?
그는 이해하지 못할 머리 나쁜 사람들을 제자로 받을 생각이 전혀 없다고 밝힌 바 있지만 ... (근데 겸임교수도 대학원생을 지도할 수 있나?...)

세간의 모든 핍박을 받는 이유 중 하나는 내가 느끼는 그런 일종의 두려움의 표출이 아닐까?
예를 들어 심형래의 역작을 무참히 짓밟는 그의 행태를 보면서 감정이입 혹은 대상화하여 마치 진씨가 자신을 욕하고 있다고 느끼는 ...너무 설레발인가?
아님, 그의 들으면 들을 수록 박식한 논리에 감히 대항할 수 없는 혹은 그 논리의 아우라에 대항하는 것 만으로 견줄만한 지적 수준임을 과시하고자?...
그것도 아님 잘난 놈은 무조건 미워하고 보는?

진씨 입의 말이 달고 쓴것은 듣는 개인의 귀에 대한 문제일 터...그의 태도는 그의 부모님들이 매를 들 일이지 더이상 사회가 뭐라 할 수 없지않을까?
마치 최민수의 카리스마를 인정하듯 그의 입도 인정해야 한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자세...뭔가 있어보이지 않나?...

요는 내가 쓰는 논문의 적확성이나 논리적인 충실함에 좀더 신경을 써야 한다는 사실이다.

Wednesday, September 05, 2007

책 읽기? NO, 이젠 책 쓰는 시대

1.
TIME紙에 거울을 달고 올해의 인물은 'You'라는 말이 증명하듯이 점점 스스로를 드러내는 일이 잦아지고 광범위하게 늘어나고 있다.
책 시장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데 이젠 누구라도 - 누구라도! - 책을 쓰고 있고, 출판해서 당당히 베스트셀러에 등극하는 예도 드물지만 생기고 있다.
최근에는 자신의 책을 쓰라는 책(100권 읽기보다 한 권을 써라 , 멋진 내 책 만들기)이 노소를 불문하고 유행하고 있다.

2.
외국에서는 실제 개인의 체험을 책으로 발간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소개되고 있다.
최근에 Bonfire of the brands, 택시운전사, 남장여자 등 1, 2년여의 경험을 블로그(택시기사)에 올리거나 책으로 발간하는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3.
누구나 책을 쓸 수 있는 시대가 왔다. 논픽션에 대한 사람들의 대단한 관심이 이제는 관음증을 대리만족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는게 아닐까?
영화 트루먼쇼의 마지막 장면, "다른 채널에서는 뭐하지?"...
유행은 언제고 사라지고 다시 돌아오기도 한다.
하지만 책을 쓰고 싶은, 생각을 정리하고 말하고 싶은 욕망은 언제고 우리 속에 자리잡고 있다. 나도 책을 쓰고 싶다.
전에 타던 차가 아벨라 92년 산이었는데 30만km를 훨씬 넘게 몰았다. 40만이되면 노하우를 전수할 수 있는 책을 쓰고 싶었다. 물론 그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다. 이제 다른 소재를 찾아봐야겠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어렵사리 풀어놔도 사람들이 재미있게 읽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이해를 못하면 쓸모없는 책이 되고만다.
나를 이해시키고 다른 이를 이해시킬 수 있는 연습이 필요하다.